태국 치앙마이에서 편지를 씁니다. 

누가 그랬어요. 저는 책임감이 강하고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그래서 나의 마음이 동하지 않은 일을 하거나, 말을 전할 때 무거운 죄책감 때문에 특히 더 괴로워할 수 있대요. 이 불편한 마음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이러지' 하고 숨겨두는 타입이라나. '선생님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됩니다.'

또는. 다소 불균형한 마음을 잘 달래서 똑바로 일으켜 세우려면 사치를 부리거나, 사소한 걸 바꾸는 게 도움이 된대요. 어느 정도로 사소해도 되냐면... 늘 오른발부터 양말을 신었다면 하루는 왼발부터 양말을 신어보는 거예요. 루틴에서 벗어나는 일탈. 이게 제가 받은 처방전이었습니다. 

꼭 이 처방전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치앙마이에 왔어요. 맨얼굴에 아무렇게나 걸친 옷가지, 친절한 사람들, 화려한 야시장, 더러워진 손톱, 작은 골목길 코너의 불상. 이곳은 길거리에 쓰레기도 없고, 자동차와 스쿠터들의 혼잡한 행진 속에서 그 누구도 클락션을 울리지 않아요. 태양은 뜨겁지만 사람들은 미지근해요. 극단적이지 않고 뭐든지 알맞게 적당하단 뜻이예요. 무심코 들린 빈티지 시장에서는 김현철의 노래가 나오기도, Tyler the Creator의 신곡이 나오기도 했어요. 그리고 저는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렴 어때. 

추운 서울로 돌아가면 잠시 녹았던 마음이 다시 얼어붙을 걸 알아요. 잠깐만이라도, 이 정도의 사치는 괜찮겠죠? 방구석에서 코코넛칩이나 까먹으며 보사노바를 듣습니다. 

미지근해서 좋은 치앙마이에서,

G로부터